정의기억재단

그녀들의 역사

일본의 강제 동원으로 송두리째 뒤바뀐 그녀들의 삶

'군위안소'는 설립, 운영, '위안부' 모집에 있어 군이 직접 하거나 민간에 위임한 경우 그밖에 시기와 장소 등에 따라 다양한 형태를 나타냈으나 어느 경우에나 군대의 보호와 감독, 엄격한 통제를 받았다. 각 '위안소'의 규정에는 계급별 사용시간, 요금, 성병 검진 및 기타 위생사항 등이 명기되어 있었으며, 많은 군인이 몰려 20~30명이 문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고 일본군인들이 증언하고 있다.

(좌) '위안소'에서 사용된 콘돔, '돌격 1호'라 불리었다.
(중) '위안소' 규정: 군인군속 외 입장금지 규정, 입장요금 등이 병참사령부 명의로 적혀있다.
(우) 줄을 서서 기다리는 군인들

'위안부'들은 일본 병사들의 안전을 위해 성병검진을 주기적으로 받아야 했으며, 월경, 임신, 질병에 걸리더라도 무자비하게 강간을 당했다고 증언한다. 여성들은 마음대로 '위안소'를 떠날 수 없었고 기본적인 이동이나 생활도 통제를 받아야 했다. '위안부'들을 일컬어 “천황이 하사한 선물”, “위생적인 공중변소”라고 하는 기록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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