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재단

그녀들의 외침

강덕경 할머니 삶 (1929~1997)

우리 할머니들 그리 쉽게 안 죽고,
오래 살거예요.

강덕경 할머니 삶 (1929~1997)

우리 할머니들 그리 쉽게 안 죽고, 오래 살거예요.

강덕경 할머니는 1929년 경남 진주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진주 요시노 국민학교 고등과 1학년일 때 일본인 담임교사에 의해 반장과 할머니는 근로정신대 1기생이 되어 일본 도야마 현의 후지꼬시 비행기 부속품 제조공장으로 연행되었습니다. 그 때 할머니는 16살(1944년)이었습니다.
두 달 후쯤 할머니는 배도 고프고, 너무 힘들어 도망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만 일본 헌병에게 잡혀서 강간당하고 군부대로 끌려가 그 때부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하게 되었습니다. 위안소에서 아이를 임신한 채 해방을 맞이했고, 해방 후 전남 남원에 머물면서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진주까지 찾아가기는 했지만 아이가 딸린 몸으로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어 다시 부산으로 이동하여 그 곳에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기고 식당일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아이는 네 살 때 고아원에서 폐렴으로 죽었고 그 이후 남의 집일, 식당일, 하우스농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지만 번 돈은 ‘위안부’ 후유증으로 인해 산부인과 병원비로 다 써버렸습니다.
할머니는 1992년(64세)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세상에 알리고 일본 정부로부터 사죄와 배상을 받기 위한 운동을 시작하셨습니다. 신고 후 위안소에서의 경험과 아픔을 그림으로 그려내 [빼앗긴 순정], [사죄하라], [책임자 처벌]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1995년(67세)에는 변영주 감독의 다큐멘터리 ‘낮은 목소리2’에 출연하였으며, 자신이 폐암말기라는 사실을 알고 죽기 전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자신을 끝까지 영화로 담아주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죽음을 눈앞에 둔 병상에서조차 범죄 인정과 법적 책임을 회피한 채 위로금으로 무마하려 했던 일본의 ‘아시아국민기금’을 거부하셨습니다. 아직 완성해야 할 그림들이 많은데, 그 그림들을 스케치 상태로 남겨둔 채 할머니는 1997년(69세) 2월 폐암으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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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들이 나서지 않는다면 누가 관심을 갖겠습니까. 몸이 아파 쉬고 싶을 때도 있지만 이렇게 나와 목청껏 구호를 외치며 기운을 내보려 애씁니다.”

“젊을 때는 결혼하자고 따라다니는 남자들도 많이 있었죠. 그래도 정말 결혼은 못하겠습디다. 제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오냐 좋다고 살 남자가 있겠어요? 요샌 그 때 다 덮어두고 결혼을 해버렸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특히 명절 같은 땐 이렇게 피붙이 하나 없이 그냥 가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아찔해지기도 합니다.”

“8.15 광복으로 위안부 생활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8.15를 거듭 맞으면서 정말 끝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온전한 배상을 받고 책임자 처벌을 제 눈으로 똑똑히 봐야 진짜 끝날 수 있겠죠.”

“일본은 우리 할머니들이 돈 한 푼이면, 얼마 던져주면 될 줄 알아도, 천만에! 우리 할머니들이 이렇게 비록 나이가 많아도, 이리 아파도, 우리가 죽을 때까지, 다 죽고 한 사람이 남을 때까지라도 일본 정부하고 싸울 테니까. 우리 할머니들 그리 쉽게 안 죽고, 오래 살 거예요. 독해졌어요. 갈수록 더할 거예요. 일본이 그렇게 만들었어,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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