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재단

그녀들의 외침

김순악 할머니 삶 (1928~2010)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김순악 할머니 삶 (1928~2010)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김순악 할머니는 1928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나셨고, 1943년 16세의 나이에 공장에 취직을 시켜준다는 말을 듣고 중국 북경으로 연행되어 하얼빈, 내몽고를 거쳐 북경 장가고에서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하였습니다.
1945년, 김순악 할머니가 18세 되던 해에 중국 북경 장가고에서 해방을 맞았고 1년여쯤 후인 1946년에 압록강을 거쳐 평양으로 귀국하셨습니다. 이후 생계를 위해 달러장사, 남의집살이 등을 하며 살았습니다.
할머니는 2001년(74세)에서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셨으며, 국내외 증언집회도 참석하여 일본군‘위안부’의 실상을 증언하기도 했으며 대구 ‘정신대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에서 진행하는 원예치료 프로그램에 꾸준히 참석하여 원예작품 전시회를 갖기도 하셨습니다.
2009년 대장암이 발견되어 수술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오랜 병고와 노환으로 결국은 2010년(83세) 한 많은 생을 마감하였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여 소년소녀가장을 돕고, 시민모임에서 추진하는 일본군‘위안부’역사관 건립 사업에 써달라고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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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날은 마- 바글바글 하이 나라비로 서 가지고 들어오는 거지 뭐, 내 하나에다가 군인들이 나라비로 서가 있으면, 화장실에 갈라면 우리 서가 있는 거 있지? 한 애 앞에 그렇게 배치가 된다 이 말이야. … 하루 일요일, 토요일 같은 날은 삼십 명썩, 사십 명썩 사람을 상대한단 말이라. 군인을 그저 뭐 십 분, 오 분 뭐 이런데, 내우 간에 자는 거매로 그래 옷을 벗나.”

“점숨 먹을 여거가(여가가) 어디있노? 소금에다 주먹밥 해 가지고는, … 도재이(도자기) 그릇 같은 넙떡 한데 서너 개 담아 가지고 들라준다. 유치장에 들라 묵은 거 매로.”

“친한 사람이 없지. … 지금도 넘한테 얼굴도 지대로 못 들고 댕기고, 술로가 살았는데 그때도 낯선 여자들캉 만내키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지. 그러니께네 그때는 수심도 가득하고 그 사람들이 하자 하자는 대로 가야되고 무라카면 묵고, 자라카면 자고, 뭐 여기 있으라카면 있는 기고, 아무것도 그때 이야기를 잘 모리겠어.”

“해방되이께네 나라가 꺼꾸러 되었는지 어에 되었는지 아무것도 모리는데, … 우쨌거나 웃었는동 사람 죽는 것도 모리고, 와 이카노 싶은 게 말이야. 그런 총탄 속에서도 안 죽고 이래 살았는, … 그런 생각을 하면 우째 살았는가 싶은고 내가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

“아가씨나, 머심애나, 얼래나 … 사람을 안 만나고 싶다카이께네. 사람을 만내서 이런 얘기도 하고 이래야 되는데, 어디 통 한데가 없으끼네이. 내가 이야기해가 ‘어이구 그랬구나, 참 애 묵었다.’ 이렇게 보드랍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 인자 마이 좋아졌어. 술 안 먹고는 이런 말을 주끼진(이야기) 안 해.”

“내 그마이- 안살라고, 다 버리고 다 -버릴라 하고, 옛날 꺼. … 우리 동생 술 먹고 죽는 거 보이 인자 술 먹고 죽어야지 하고는 난 더 먹고 죽을 라고 막- 소주 먹었다. 소주 댓병으로, 그라다 보이께네이 훈이 할매가 떡 들어오는데, 가슴을 치겠더라꼬…인자 텔레비전 보면 아- 저런 사람도 다 사는데 나는 누가 들봐다 보겠노. … 어데다 이런 이야기를 해야 되겠노? 어떻게 해야 되겠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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