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재단

그녀들의 외침

문필기 할머니 삶 (1925~2008)

평생 가슴에 못 박고
잊지 못할 상처를 안고 죽을란지도 몰라.

문필기 할머니 삶 (1925~2008)

평생 가슴에 못 박고 잊지 못할 상처를 안고 죽을란지도 몰라.

문필기 할머니는 1925년 경남 진양군 지수면에서 태어났습니다. 학교에 가고 싶어서 어머니가 몰래 입학을 시켜 주었지만 아버지의 반대로 5일 만에 그만두고 맏이로서 집안일을 거들면서 지냈습니다. 1943년 18세 되던 해에 마을의 일본인 앞잡이가 공부도 하고 돈도 벌게 해 주겠다고 하는 말에 속아서 일본군‘위안부’로 연행되었습니다. 마을에서 트럭을 타고 부산으로 간 후 기차를 타고 곳은 만주의 위안소였습니다.
처음 몇 달은 낮에는 병원에서 병원 일을 시키고 밤에는 ‘위안부’가 되었으나 그 후 몇 달이 지나자 병원일을 그만두고 ‘위안부’ 생활만 해야 했습니다. 1945년까지 3년 간 만주에서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하던 할머니는 해방 후 고향으로 귀국하였습니다. 고향으로 돌아와서는 가족들에게 위안소에 있었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공장에 취직도 하고 공부도 했다고 했습니다. 결혼하라는 어머니의 성화에 돌아온 지 1년 만에 집을 나와 진주에 있는 사촌 이모의 집에서 거주하였고 이후 이모집을 나와 하숙집, 대폿집 등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습니다.
할머니는 50대 후반부터 동생의 손자를 아들처럼 키워왔으며, 1992년(68세)에 일본군‘위안부’로 등록하였습니다. 이후 매주 빠짐없이 수요시위에 참석하였고, 1994년에는 일본 검찰에 일본군‘위안부’문제 책임자 처벌을 위한 고소, 고발장을 제출하는 등 일본군‘위안부’문제 해결과 관련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습니다. 2008년 지병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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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여섯 살에 내가 공부 때문에 끌려갔다. 공부, 그놈의 공부는, 공부는 왜 할려고 그랬었는가. 그것도 배우지도 못하면서.. 아휴- 그게 억울하지, 공부 때문에 공부 시켜준다. 뭐 공장 보내준다 그래갖고 밤에 갔어, 밤에.”

“일본사람 앞잡이었던가봐, 나는 앞잡이일 줄 몰랐지. 그러니까 저녁때 나오라고 해서 나가 가지고 끌려갔다니까. 말 한마디 물어보더니 그냥 나를 더러러니 태워갖고 가버렸어. 우리집 문 앞에. 우리 엄마도 모르고 아버지도 모르고 아무도 몰라. 아는 사람이라곤.”

“그래서 저기 끼리 막 경례하고 그래. 아휴 그러더니만 한 없이 눈물이 나고. 엄마 생각이 제일 많이 나더라. 어머니 생각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보고 싶고, 그래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고 말이라도 한마디 하고 왔으면 덜 속상한데……. 거기서 잠깐 들어왔다 나가라고 하면서 끌고 가는 놈들이 어디가 있니? 그래 가가지고 아… 어디를 가는지… 막 차를 타고 가는 거라.”

“보초병들이 늘 우리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도망갈 계획을 짤까 봐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도 못하게 했다. 그래서 위안부들끼리도 서로 잘 몰랐다.”

“군인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왜 부모 말을 안 듣고 이 신세가 되었나 싶어 후회가 막심했다. 결국은 내 자신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해만 지면 부모 생각에 가슴이 저미었다. 차라리 부모가 시집가라 했을 때 말을 들을 걸, 공부가 뭐길래 공부시켜 준다는 말에 속아 이곳에 와서 이 신세가 되었나 생각하며 절망하였다. 가족들이 미칠 듯이 그리워 매일 울고 남의 슬픈 소리를 조금만 들어도 울곤 했다. 나는 집 생각, 엄마 생각으로 마음에 병이 나서 몸져눕기도 했었다.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 아휴… 내가 그런 애기를 할라니 한숨이 나서 애기를 못한다. 그래 일본놈들도 그만큼 독하고 그 어린 것들을 인제 가만 생각하니까 너무 괘씸해. 어린 것들을 자기 노예처럼 부려먹고. 우리가 노예지. 노예는 노예야. 그만큼 저거한테 당했으니까. 한국여자들이 무슨 죄가 많다고 그렇게 당했니. 당한 일을 생각하면 기가 막혀.”

“어디가 있어도 안정이 안 되더라. 안정이 안 되고 내가 왜 신세가 이 신세를 어떻게 면하나. 근데 또 생각하면 갈 곳도 없고 이곳에 가도 그렇고 저곳에 가도 그렇고 친척네 가도 그렇고. 옛날에는 친척이라고 하면 그렇게 잘못될까 싶어 걱정을 했는데. 이제는 천척이면 친척, 지금도 그래. 반가운 사람이 없어 반갑다 할 사람이 없더라구. 누가 그걸 알아주겠어. 알아줄 사람도 없지만. 평생 가슴에 못 박고 잊지 못할 상처를 안고 죽을란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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