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재단

그녀들의 외침

안법순 할머니 삶 (1925~2003)

사람이라면 그게 헐 일이냔 말이에요.

안법순 할머니 삶 (1925~2003)

사람이라면 그게 헐 일이냔 말이에요.

안법순 할머니는 1925년 경기도 양평군에서 6녀 1남 중 셋째 딸로 태어났다. 17세가 되던 해(1941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서울로 올라와서 남의집살이 일을 하였습니다. 시장을 보러 가던 중 길에서 연행되어 부산을 거쳐 싱가포르의 위안소에서 일본군‘위안부’ 생활을 하였습니다.
싱가포르 위안소에서 5년 동안 있었던 그녀는 해방 후에 다시 싱가포르의 포로수용소에 수용되었다가 1946년에야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24세에 강씨와 결혼했으나 남편이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되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여주, 이천 등지에서 피난 생활을 하였습니다. 이후 음식 장사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1995년(71세)에 일본군‘위안부’로 등록한 뒤 수요시위에 빠짐없이 참석을 하였으며, 2000년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성노예전범여성국제법정에 원고로 참석하기도 하였습니다. 2003년 9월 12일, 지병으로 고생하시다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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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언니는 그러니까는 서른다섯에, 유월 달에 돌아 가구, 둘째 언니는 또 서른하나에 정월 달에 돌아 가구. … 집안이 망그러질려면 사람이 그렇게 죽드라구, 사람이. 그 명(命)을 이어서 내가 이렇게 오래 산대잖어, 글쎄. 그 여러 사람 명(命)을 이어서.”

“나는 일 시켜먹을라고 데려가는 줄 알았어. 무신, 저, 군인 빨래두 해 주구, 밥두 해 주구. 그랬지, 누가 그러는 줄 알았어요? 그거? 여기서두 식모살이를 했으니까, 응, 그러는 줄 알았지.”

“그래, 원체 내 맘이 대범하구, 뭐 그랬다고 해두, 겁나구 무서웠지. 그, 안 무서웠겄어 그게? … 나는 그래, 사람이라면 그게 헐 일이냔 말이예요. 아니 옛날에 시집을 가서 한 남자두 무서운데, 이 그, 아유-- 아- 지금도 이십 살, 삼십 살을 먹어두 저거를 하는데, 그 때 열일곱 이면은 그거 뭐 철부지지, 뭐예요?”

“그래서 내가 이름이 안 좋은가부다. 더 아프지 말라구, 죽을래면 얼릉 죽던지. 그때는 죽는 게 좀 안 되긴 안 됐지. 왜냐하믄 우리 어머니 땜에, 응, 뭐, 어머니만 아니면, 뭐, 그까짓 거 죽는 데두, 뭐 겁날 것도 하나두 없지, 뭐. 몸땡이두 그렇게 됐는데, 무신 뭐, 살기를, 그거 사는 거야? 그게?”

“우리 어머니조차 몰르고 돌아가시고. 내 가심 속에 묻고 가는 거지, 내 얼른 이만큼 나이가 먹었으니까, 얼른 죽어서 인제 새루 태어나든지 뭐 어쩌든지. 으휴, 어여 가는 거밖에 없지, 지금 생각이.”

“‘아휴- 그 할머니 참 그렇게 마음새가 괜찮더니, 참 돌아가기두 잘 맞춰 돌아갔어.’ 아이, 그런 소릴 들어야 할 텐데 글쎄, 그게 걱정이래니까. 하하하하하, 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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