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재단

그녀들의 외침

김분선 할머니 삶 (1922~2005)

말도 못하지 뭐.
그 말을 이루 어디다가 말을 다 하고.

김분선 할머니 삶 (1922~2005)

말도 못하지 뭐. 그 말을 이루 어디다가 말을 다 하고.

1922년 경상북도 칠곡군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16살이 되던 해(1937년)에 친구들과 나물 뜯으러 갔다가 일본사람이 공장에 취직시켜 준다는 말에 부모한테 알리지도 못하고 붙들려갔습니다. 이후 중국의 봉천과 대만에서 ‘위안부’ 생활을 하였으며, 필리핀의 마닐라로 옮겨서는 폭격을 피하면서 ‘위안부’ 생활을 하셨습니다.
위안소에 들르던 일본군인의 도움으로 할머니는 해방 전인 1944년에 귀국할 수 있었습니다. 귀국 후 고향집에 돌아왔으나 부끄러운 마음에 집에 있지 못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6.25이후 집이 불타 가족들도 대구로 나와 맏이로서 장사와 온갖 일을 하였습니다. 이후 남자를 만났으나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병원의 진찰을 받고 남의 신세를 망칠 수 없다는 옳은 마음을 먹고 헤어졌습니다.
1992년에 일본군‘위안부’로 등록하였으며, 대구에서 혼자 생활하다가 2005년 1월 지병인 폐암과 방광암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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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물 캐고 들에 가서 놀다가 붙들려 갔다니깐, 일본놈한테 들에서 놀다가 붙들려갔지. 들에서 놀다가 친구들하고, 친구들하고 놀다가.”

“고무공장 취직시켜준다고 날 데려갔는데 고무공장이 아니라 사람구더기가 되었는데.”

“그런 고생하고 내 혼자 떨어져 있는데. 어떤 이는 그리 서글프고 눈물이 났는데 그런데 가면 다들 외로워 가지고 다들 외롭지 기가 차게 외롭다. 엄마가 있으면 안 외로웠는데.”

“나는 왜 그렇냐 하면 살림을 해도 연상의 남자 못 살아보고 연상의 남자 연애 걸어 볼라 해도 안되대 그거 연하가 더 좋아 하대. 연하가 많이 딸지.”

“(노래 )문전에 아가씨가 날 괄세하더라
돈 없이 못 갈 때는 그리운 그 사랑도 날 괄세합니까
“그래 돈 없다고 괄세하는기라, 그래 돈 없어 못갈 때”
(노래)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픕니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니
그 누가 불러주는 휘파람 소리”

“요새는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참 사람 많이 따랐었는데 너무 안 좋아하니 내 가슴 아프다 하이. 그래 사람 많이 따니까는 연하하고 맨날 연애 걸지 연상은 없는데.”

“말도 못하지 뭐 그 말을 이루 어디다가 말을 다 하고. 밤새 잠 한 숨 못 자고 울고 지금은 눈물이 말랐는가 눈물이 없다 울라케도. 요새는 안 울잖어. 뭐하는데 여간해서 내 우는 거 없다. 너무 젊을 때 눈물 많이 흘려가 눈물 없어.”

“그 터는 안 가봤어, 나는 모르겠어 나는. 전부 달라져 가지고 발전이 되가. 한 번가 볼라케도 못 찾아. 못 가겠어. 나는 보면 이래 자세히 안 보고 여사로 파특파특 보고 치워버리고 하니 기억을 안 해 놓니까는 머리에다가. 어휴- 기억해 놓으면 뭐해, 내 기억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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