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재단

그녀들의 외침

송신도 할머니 삶 (1922~ 현재)

아이들이 그런 잔혹한 전쟁에
끌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최근에는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송신도 할머니 삶 (1922~ 현재)

아이들이 그런 잔혹한 전쟁에 끌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최근에는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송신도 할머니는 1922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였습니다. 16살 때 어머니가 정한 상대와 결혼하게 되었으나 결혼식의 그날 밤, 도망 나왔습니다. 친정에도 못 돌아간 할머니는 대전에서 만난 조선여자에게서 “결혼 안 해도 혼자서 살아갈 수 있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들어 따라나섰습니다.
도착한 곳은 무창 위안소였습니다. 약 3년간 “위안부”를 하였으며 임신으로 인해 한구 위안소로 옮겨 출산하였으나 위안소에서는 아이를 기를수 없어 중국인에게 맡기고 악주로 다시 옮기게 되었습니다. 1945년, 함녕의 위안소에 있을 때 미네부대 군인이 찾아와 “전쟁이 끝났다. 결혼해서 같이 일본으로 가자”고 하였고 이에 갈 데가 없어 앞길이 막막한 할머니는 이 군인을 따라 일본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일본 하카타항으로 도착하자마자 군인은 “미군의 매춘부라도 해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기차에서 뛰어내려 죽으려고 한 할머니는 어느 재일교포를 만나 미야기현에 사는 김재만씨(가명)를 소개 받아 1982년에 김재만씨가 사망할 때까지 같이 살았으나 생활은 말도 아니게 어려웠습니다. 김씨가 앓은 후로 할머니는 술집에도 나가고 공장일, 막노동, 온갖 일을 다 해보지만 끝내 생활보호금 신청을 하게 되었고 1972년부터 생활보호금을 받게 된 할머니는 “조선인”, “위안부였던 여자”, “일본국가에서 생활보호금을 받는 주제에”라는 멸시를 받으며 억울함을 품고 왔다가 김학순할머니의 제소소식을 보고 자신도 소송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습니다.
1993년에 일본 도쿄지방재판소에 소송 제기했으나 지법, 고법, 대법에서 차례로 패소하였습니다. 2007년에는 10년간의 재판기록을 담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어 한국에서도 상영되었습니다. 일본 미야기현에서 홀로 사셨으나 2011년 일본 동북부 대지진으로 피해를 입고 현재 도쿄에서 살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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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얻어맞아서 뺨에는 굳은 살이 생겨 이제는 아무리 맞아도 아프지가 않아요. 고막이 터져서 귀도 한 쪽밖에 안 들립니다. 위안소에서 한 문신이 부끄러워서 목옥탕에도 못 가고요. 그래도 살아남은 것만이라도 다행이라고 해야겠지요.”

“젊을 때는 매일 매일 군인들의 꿈을 꾸었습니다. 위안소에 대한 기억은 몇 년이 지나도, 아무리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기가 막혀서 술 퍼마시고 행패를 부린 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 봤자 억울한 심정을 달랠 수도 없고 속상해질 수 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어요. 어째서 일본의 전쟁에 조선의 철부지 아이들이 끌려가서 그런 고생을 해야 했는가,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어요.”

“동네에는 군인은급을 받는다고 큰 소리 치는 사람들도 있고, 유족 연금을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전쟁터에 끌어갈 때는 “나라를 위해서” 라고 하면서 이제 와서 왜 “조선인”, “위안부”, “생활보호” 라며 차별하는지, 통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래서 재판을 일으켰습니다. 어째서 내가 “위안부”를 해야 했는지, 왜 차별 받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러면 동네 사람들도 더 이상 백안시 못하겠지요. 재판을 시작하니까 “생활보호금 받고 남의 세금으로 밥 먹는 주제에”, “일본에 살면서 일본인만 나쁘게 말하지 말라”, “불만이 있다면 한국에 돌아가라” 등의 욕을 듣게 되었습니다.”

“재판을 시작한 후에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경험을 얘기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믿어줄지 불안했지만 모두 마음으로부터 잘 들어줬습니다. 그 안에는 내가 위안소로 끌려간 때와 같은 또래 아이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지 걱정되고 챙피해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자리에서 도망가고 싶었지만 할 수 없이 얘기했지요. 그랬더니 그런 아이들도 내 이야기를 잘 듣고 눈물 흘리며 뜻을 알아 주었습니다. 반은 속 시원해졌어요. 안심했습니다.”

“잔혹한 전쟁은 두 번 다시 해서는 안됩니다, ‘위안부’만이 아니라 중국인도, 일본군병사도 시달린 비참한 모습을 나는 이 두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그런데 일본정부는 또다시 그런 잔혹한 전쟁을 시작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과거를 반성 안 하니까,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르니까, 그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내 얘기를 눈물 흘리면서 들어준 그 아이들이 그런 잔혹한 전쟁에 끌려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최근에는 좀처럼 잠을 잘 수가 없어요. 정말 잠을 못 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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