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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성노예제 아시아 피해자 지원 활동 일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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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성노예제 아시아 피해자 지원 활동 일지 (2) - 인도네시아 지원 둘째 날 ~ 다섯째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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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 1만 수 천 개 섬으로 구성되는 광활한 국토에 아름다운 자연을 자랑하는 인도네시아에도 과거 참혹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가혹한 중국전선에서 큰 전투가 거의 없었던 인도네시아로 온 일본 군인들은 낙원에 왔다며 여성에 대한 폭력을 일삼았습니다.

전쟁 후반기에 피해당한 인도네시아 할머니들은 우리 할머니들보다 좀 어리십니다. 그러나 할머니들에게 ‘몆 살 때 피해 당하셨어요?’ 물어보면 거의 모른다 하십니다. 당시 출생등록자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리 있었어요?''가슴 컸어요?'식으로 질문하면 대답을 하십니다.

할머니 댁에 직접 지원을 가면 어려운 삶이 바로 눈에 보입니다.

더부살이, 쓰레기 수집처 안 스램에서 혼자 사시는 분, 아파서 3주 동안 아무것도 못 드시고 있다는 할머니는 뼈밖에 없는 몸으로 누워계시지만, 멀리 한국에서 왔다고 반가워하시고, 선물로 드린 한국 할머니 응원액자, 작은 소녀상을 소중하게 안아주셨습니다. 한국에서 보낸 연대가 할머니들의 힘이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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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 - 인도네시아에는 민족마다 250여개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할머니들의 증언을 들으려니 이중 통역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역 언어 전문통역이 찾기 어려워 가족이나 이웃 사람이 할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에 진행한 조사에서 아들이 어머니에 증언을 통역하러 온 적이 있었답니다. 그냥 전쟁 시기에 이야기를 말할 줄 알고 왔더니 어머니의 믿기 힘든 과거를 알게 된 것입니다. 할머니는 끝까지 말을 못하고 그냥 가셨답니다. 그 할머니는 오늘 아파서 못 뵈었지만 대신해 아들이 왔습니다. 처음엔 충격을 받았는데 그래도 어머니가 고백을 하면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이고 어머니의 힘이 되고 싶다 하십니다.

오늘은 8분 할머니를 만나 뵈었습니다. 이번에 현지 단체가 새로 보내준 리스트를 토대로 인터뷰도 같이 진행했는데 대부분은 이중통역이었습니다.

"13살 경, 말을 타고 온 일본군인이 집에서 끌려가 숲 속의 어느 집에 갇히자 3개월간 한 군인한테 강간당했어요. 병들어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14살인가 15살 때 집 앞에서 트럭에 실려 10명 정도가 함께 끌려갔어요. 위안소에는 20개정도 방이 있었고 거기에 6개월 동안 있었어요. 처음에 강간한 일본군인 이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김복동 할머니 영상메시지를 보여드렸더니 "일본은 사죄하라! 보상하라!" 함께 외치시고, 수요시위 영상 보면서 "필요하면 나도 시위하겠다!"하시니 모두가 같이 웃었습니다.

 

 

넷째 날 - 우리는 인도네시아 남술라웨시에 있습니다. 수도 자카르타에서 비행기 타고 2시간30분 거리입니다. 인터뷰하면서 이 지역의 여성들의 피해 특징들이 조금씩 보이게 된 것 같습니다.

먼저, 일본군성노예제 피해 형태가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위안소에 끌려가 자유를 빼앗긴 채 연일 많은 일본군인들한테 강간당하는 사례 외에 장교 등 고위급 군인 집에 감금되어 특정한 군인한테만 당하는 사례, 위안소나 집에 감금되지 않고 자택에서 군인들이 있는 장소에 매일이나 그들이 부를 때마다 끌려가는 사례 등 다양한 피해형태가 있어 놀랐습니다.

한 할머니 딸은 일본군이 만든 비행기장 내 방공시설이 일상적인 강간장소로 되어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군인들이 어머니한테 방공시설에서 식사와 빨래를 하라고 시켰다. 여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어머니만 남겨놓고 나머지는 돌아가라 했다고 했다. 어머니는 집에서 방공시설로 매일 가고 거기서 강간당했다. 당시 어머니는 17살 정도였다. 나중에 마을에 계시는 또래 여성들에게 물어봤더니 같은 경험을 한 여성들이 15명 정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다 비밀이며 가족진척이 알면 나를 죽일 것이다 하신다. 여기는 그런 데다. 어머니한테 왜 도망가지 않았냐고 물어봤더니 저항하면 충살 당한다고 했다.‘ 고 말했습니다.

 

또한, 여성들을 강제로 연행한 사례가 많았습니다.

“집에 군인이 와서 총으로 협박해 트럭에 실려 끌려갔습니다.”

“부모님 안 계실 때 갑자기 군인들이 집에 들어와 납치당했습니다.”

“소학교 앞에 트럭이 와서 저와 여자애들을 많이 실어갔습니다.”

 

그리고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전쟁 끝난 후 가족이 피해자들을 받아들이지 않아 혼자 힘들게 살아오신 경우가 적지 않았습니다.

“해방 후 돌아가니 ‘일본사람과 잔 여자는 더럽다.’며 집에서 쫓겨났어요. 결혼은 안하고 남의 논밭에서 일했어요.”

“12살이었어요. 위안소에 감금돼 많은 군인들을 상대해야 했어요. 1년 정도 거기에 있다 집에 갔더니 부모님을 돌아가시고 진척은 ‘너는 매춘부.”다며 나가라고 했어요. 그 때가 14살이었어요.“

 

반면 할머니들 곁에 지원자들 손길도 보였습니다. 우리가 방문하러 가면 늘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하고 할머니들을 돌봐주시는 모습에 마음이 놓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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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날 - 오늘은 한집의 세자매가 같이 끌려가 피해당한 사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큰언니는 일어날 수 없어서 누워계시고 말씀 나누기 어려웠는데 반갑게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작은언니는 치매로 과거를 잊으시고 막내 동생 할머니가 말씀해주십니다. 시작하려니 할머니는 가족들한테 방에서 나가라고 하시고 작은 목소리로 입을 여셨습니다. (할머니의 가족들은 피해 사실을 모르고 계십니다.)

 

일본점령시기에 아버지가 농사짓고 있을 때 세자매가 함께 차에 실려 연행되었습니다. 자매는 각 방에 감금되어 만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첫날부터 군일들한테 당하고 밤마다 군인들이 들어왔습니다. 누구랑 말할 수도 밖에 나갈 수도 없었습니다. 군인이 가라 해서 자매가 같이 거기서 나갈 수 있었고 얼마나 참혹한 일을 겪었는지 서로 이야기했습니다. 만약 돈을 준다고 해도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는 가슴 깊이 기억을 가두고 한 번도 이야기 안했습니다. 막내 할머니는 남자가 무서워서 결혼 안했습니다.

할머니는 분노보다 아직 무섭고 슬픔만 남아 있다고 하십니다. 만약 일본군인이 앞에 와서 사과해도 용서 안할 것이며, 언니들은 가끔 당시 기억이 떠올라 힘들어 한다고 하십니다.

 

한국에도 같은 피해를 당한 할머니들이 계시고 문제 해결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국 할머니도 전쟁 후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지만, 당신과 같은 피해를 미래세대가 당하지 않도록 용기를 내서 고백하셨다 하자, “우리는 아직 무섭다.” 하십니다.

그래도 이번에 처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고백한 할머니를 우리는 존경하며, 결코 할머니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부끄럽지도 않다, 부끄러운 짓을 한 사람들이 할머니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당한 사람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많은 시민들이 이 문제를 알게 되었고 할머니들과 손잡고 함께 하고 있다, 우리는 인도네시아 할머니들과도 손잡겠다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김복동 할머니 영상메시지를 보여드리니 기쁘다며 감사하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셨습니다.

 

인도네시아 할머니들한테 일본군에 대해 물어보면 아직도 무섭다고들 하십니다. 군인도 무섭고 나서서 고백하는 것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신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세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할머니들을 응원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다 많은 피해자들에게 전해드리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남술라웨시 거주 피해자들은 집 근처에서 피해를 당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지금도 같은 지역에서 살고 계십니다. 그러나 얼굴 알고 있어도 서로의 상처를 모르십니다.

한국 할머니들은 운동 초기에 인권캠프를 통해 교류를 하셨습니다. 인권캠프 아니어도 한 마을에 계시는 할머니들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소박한 자리를 준비해봤습니다. 앞으로 혼자 힘들어 하시지 말고 서로 재미있게 놀고 치유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총 14명의 할머니들이 찾아오셨는데 만나자마자 시끌벅적 여기저기서 이야기 나누며 웃음소리 터집니다. 순서는 각자 자기소개하고 한국의 활동소개, 김복동 할머니 영상메시지, 간담과 노래... 자기 이름만 이야기해도 웃고 한국에서 와서 인도네시아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하니 웃고... 그러다가 한국 활동과 피해자 소개를 드리니 집중해서 경청해주시고 한마디 드릴 때마다 끄덕끄덕하시고 때론 우십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조금이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을까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방문으로 남술라웨시 거주 할머니 총43분에게 정의기억재단과 정대협 나비기금에서 후원을 전달했습니다.

 

앞으로도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를 지원하고 손잡을 것을 약속합니다 .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정의기억재단 #20만동행인 #나비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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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재단 17-04-1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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