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기억재단

그녀들의 역사

잊어서는 안 되는, 반드시 역사에 남겨야 할 일

(1) 해방 후 생존자들의 생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은 '위안소’에서 당한 구타나 고문 그리고 성폭력 등으로 인해 평생 치유하기 힘든 신체적 고통 속에 살아야 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고 이로 인해 가정을 이루는 것도 힘들었다. 무엇보다 여러 심리적 후유증을 평생 안고, 주위의 시선과 편견에 맞닥뜨려 긴 세월을 침묵 속에 살아야만 했다.

(좌) '위안소’에서의 폭력으로 어깨가 탈구된 故 김은례 할머니
(중) 북한 피해자 김철순 할머니의 새겨진 '위안소’ 경영자의 이름
(우) 울부짖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강순애 할머니

(2) 침묵을 깨트린 용기
1988년 '여성과 관광문화 세미나’에서 윤정옥 교수에 의해 처음으로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세상에 드러난 후 많은 여성단체와 더불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결성되어 일본 정부를 향해 문제 제기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관여 사실을 부인했다. 이에 故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바로 일본군'위안부’피해자임을 공개적으로 증언했다. 이는 다른 피해자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용기를 주었고 문제 해결을 향한 걸음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이웃, 가족과도 단절된 채 일본군'위안부’피해 사실조차 제대로 이야기할 수 없었던 생존자들은 많은 여성, 시민들과 손잡으면서 적극적으로 일본 정부의 범죄행위를 고발하기 시작했다.

(좌) 1991년 8월 14일 최초로 공개 증언하는 故 김학순 할머니
(중) 1991년 9월 18일 정신대신고전화 개통
(우) 1992년 1월 8일 제1차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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